#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by YsH




둠이 새까만 나무의 바다를 물들였다. 간간히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어둠의 바다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켰다. 달빛조차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괴상하게 비틀린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붉은 불빛이 비친다.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타닥타닥. 

 나무가 없는 좁은 공터에 한 사람이 불을 쬐고있었다. 옆을 둘러싼 숲과 달리 이곳의 모습은 비교적 편안한 보금자리처럼 보였다. 두툼한 침낭, 의자처럼 편평한 바위, 꽤 튼튼해 보이는 화덕. 인간의 손길이 오랫동안 닿지 않은 이곳에선 그 모습은 썩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이 그런 사회적 통념을 깨고있다는 사실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온 정신을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했다. 이를테면 부지깽이로 타고있는 장작을 이리저리 쑤시는 일 같은. 그 덕에 바람이 들어간 나무는 따닥이는 소리를 더욱 거세게 내뿜으며 고요한 바다의 정적을 깨부쉈다. 잘 마른 장작이 쏟아내는 흐릿한 연기는 한마리의 용처럼 하늘로 구불구불 올라갔다. 그 불 가운데에는 한마리 짐승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버려진 땅, 격리구역. 지구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한 사람이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이가 들으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혹은 흥미를 가지고 그 작자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다고 하던가. 하지만 후자의 바램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주변을 덮은 어둠도 어둠이였지만, 바람을 피하기 위해 덮어쓴 회색 모포가 얼굴을 포함한 몸 전체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썰미가 좋은 자라면 그 모포 오른쪽 부분, 그러니까 오른팔이 있어야 할 부분이 이상하리만큼 튀어나왔단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혹 두명이 한 모포를 덮어쓴 것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와는 달리 오른쪽 부분은 아주 미세한 미동조차 없었다. 마치 무언가 커다란 물체를 옆에 둔 것 같은 모습이였다. 자신은 그런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는걸 모르는지, 그는 이정도면 충분히 익었다고 생각했는지 장작을 찌르던 그의 왼손을 태연히 짐승이 꽂혀있는 꼬챙이에 가져갔다. 

길쭉한 나무가지에 꽂혀있는 짐승의 모습은 퍽 괴상했다. 가죽은 벗겨지고 구워져서 제대로 된 모습은 알 수 없었으나, 크기나 형태는 작은 개와 비슷했다. 하지만 그것의 꼬리는 비정상적으로 길었다. 별로 식욕을 돋우는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그 짐승을 입으로 가져갔지만 몸통보다 2배는 더 길게 늘어진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를 귀찮게 하였다. 그는 먹기 편한 각도를 찾으려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으나 그 긴 꼬리는 그를 방해하는 것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꼬리를 떼어내는 방법을 택했는지, 꼬리 끝부분을 이로 꽉 물은 채 거칠게 잡아뜯었다. 왜 오른팔을 쓰지 않고 굳이 그런 야만적인 방법을 고수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가죽이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80cm는 족히 될만한 긴 살덩어리가 그것의 몸과 작별을 고했다. 그런 애끓는 분단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입에 물고있던 꼬리를 무심하게 불 안으로 퉤 뱉었다. 불속으로 들어간 기다란 살덩이는 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는 으적으적 씹히는 고기의 질감에 감탄했다. 고무장갑과 경합을 벌여도 한치의 밀림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물론 질감 뿐 아니라 맛 또한 끔찍했다. 비린내와 누린내, 그리고 핏물이 제대로 빠지지 않아 나는 미묘한 쇠맛이 가미되어 놀라운 역겨움을 선사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한입도 채 먹지 못하고 바로 내뱉었을 맛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런 맛에 익숙하다는 듯이 그 고기를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사실 그가 고기의 식감이나 맛에 불평하지 않는 것은 그런 '사소한' 일엔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 날 낮에 본 모습이 자꾸만 그의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젠장.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내가 여기에 있는거지? 그는 자신이 이런곳에 있는 이유를 곱씹어보았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어른거리는 형상과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서로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사실을 한껏 느끼고 있었다. 신경이 쓰였다.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마음같아서는 본 것을 깨끗이 잊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저녁거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며 시간을 대충 때우는- 격리구역에서의 따분하고 고독한, 그리고 편안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낮에 본 모습은 그에게 너무 과분한 고민거리를 안겨주었다.

그것은 분명한 마을이였다. 격리구역에 방치된 옛 전쟁의 폐허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었으나, 3차 세계대전의 폐허라기엔 파괴된 곳 하나 없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경황이 없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람을 보았던 것도 같았다. 
이곳은 격리구역이다. 그것도 오염도가 심한. 근데 마을이라니? 그는 다시 한번 고깃덩이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힘줄이 모인 부분이였는지 뜯기긴 커녕 얼얼한 고통이 이를 타고 머리를 때렸다. 


"젠장!"

그는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먹던 고깃덩이를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졌다. 아니, 그녀라고 하는게 옳은 표현이였을 것이다. 모포 아래서 들려온 목소리는, 놀랍게도 남성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조금 거칠었지만 부드러운, 확실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적자생존의 혹독한 법칙이 지배하는 격리구역에 사람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도 까무러칠 정도인데, 그마저도 그 사람이 여성이라니. 자신이 다시한번 사회의 통념을 산산히 깨부쉈다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얼한 입을 어루만지며 앞으로 해야 될 일에 대해 고민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곳으로 도망쳐 온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가봐야 했다. 그 마을의 정체를 밝혀야만 했다.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리움과 유사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을 애써 부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움직임에 그녀를 덮고있던 모포가 스르륵 벗겨졌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정돈되지 않은 흑갈색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헐렁한 면티와 짧은 반바지 사이로 보이는 탄력있는 초콜릿빛 피부에는 거친 삶을 증명이라도 하는듯한 크고 작은 흉터들이 무수히 나있었다. 진홍빛 불을 내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엔, 세로로 난 길고 깊은 흉터가 왼쪽 눈을 강제로 감기게 하며 아름다웠을 얼굴을 크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불을 품고 있는 오른쪽 눈은 한기가 돌 정도로 차가운 푸른색을 띄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쪽 팔이 있어야 할 곳에는 그녀의 몸통만한 거대한 쇳덩이가 달려있었다. 정확히는 팔 모양 쇳덩이였다. 저게 과연 움직일까 하는 의구심보단 저런걸 달고 일상적인-물론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절대로 일상적이지는 않겠지만-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게 만드는 말도 안되는 물건이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불을 내려보던 그녀는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바위 옆에 대충 널부러져있는 회색 코트를 주섬주섬 챙겨들었다. 그녀의 '독특한' 신체 덕분에 코트의 모습또한 독특했다. 코트의 왼쪽 부분은 일반 코트와 비슷했고, 기계팔 위에 입어야만 하는 오른쪽 부분은 어깨까지만 덮을수 있게 수선이 되어 있었다. 코트는 오랫동안 빨지 않아 흙먼지와 때가 듬성듬성 끼어 있었으나 코트의 색 덕분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렇게 크게 더러워보이진 않을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트를 입는데 그다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오른손을 쓰지 않고, 정상적인 왼손만 이용하여 코트를 입는 솜씨가 능숙한걸로 보아 그런 몸을 가지게 된지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장작이 거의 다 탔는지 불의 화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쇳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거대한 쇳덩이가 불이 있던 자리를 덮어버렸다. 그녀의 오른팔이였다. 그 거대한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그녀는 그 팔을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앞으로 향한 다음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작은 모터가 돌아가는듯한 소음과 함께 움직이는 손가락-웬만한 성인 팔뚝만한-을 보며 그녀는 희미하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띄웠다. 

잠깐 확인만 하고 오는거야. 이정도 밤이라면 모두 자고 있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미약한 불씨를 뒤로 한 채 숲 속으로 들어갔다. 한번 더 바람이 불어 어둠의 바다에 파도가 울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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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구역의 나무는 규칙없이 제멋대로 자라있었다. 기둥보다 가지가 더 굵어 쓰러질듯 기울어진 나무, 괴상하게 비틀어져 덩굴처럼 보이는 나무, 서로 잡아먹으려는 뱀 두마리처럼 온 가지를 서로 엮고있는 나무 등.  격리구역의 숲에 익숙하지 못한 자라면 그곳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시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숲을 지나가는 한 여인에겐 이 나무의 미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 곳을 향해 나아간다 해도 길을 잃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그 숲에서,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방향을 잃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관점에 따라 경쾌하기까지 한 그녀의 발걸음이 서서히 속도를 줄여갈 때 쯤, 나무의 바다가 점점 듬성듬성해지고 안으로 조금 들어간 지형이 나타났다. 그녀는 발걸을음 멈추고 앞에 나타난 거대한 분지를 내려다보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분지임이 분명했다. 어둠에 익숙해진 그녀의 눈에 높은 울타리로 둘러쌓인 마을이 들어왔다. 


사실 밤눈에 밝은 그녀가 아니였다면 그것이 마을인지도 잘 몰랐을 것이다. 불이 들어온 집이 하나도 없어 마을엔 칠흑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마을 안은 무서우리만큼 고요한 정적이 채우고 있었다. 만약 그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면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에 안심하지 않고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거대한 기계팔을 자신의 둔부를 감싸듯이 땅에 붙여 그 위에 걸터앉은 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쓸쓸한 느낌마저 드는 마을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의 침임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울타리는 상당히 견고해 보였다. 외각을 둘러싼 울타리 안에 옹기종기 모인 집들은 대부분 나무로 지어져 있었다. 전문가의 솜씨는 아닌 듯 한 투박한 집 겉면에는 마른 흙이 꼼꼼히 발라져 있었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지금은 박물관에서밖에 볼 수 없는 꽤 오래된 건축법이였다. 적어도 '세척'을 하기 위해 파견된 인력들은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우려했던 상황이 아니란 것을 알자 안도감을 느끼며 관찰을 계속했다. 

집의 모양은 제각각 달랐다. 아무래도 주변에서 얻을 수 있는 목재의 모양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 집에선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곰곰히 생각해도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없자, 그녀는 그저 처음보는 특이한 건축법 때문이라고 단정을 내렸다. 집의 수는 적은 편이 아니였다. 적어도 50채 이상, 이쪽에서 안보이는 곳 까지 고려한다면 100채에 가까울 수도 있을만한 상당히 거대한 마을이였다. 그녀는 자신의 보금자리 근처에 이렇게 큰 마을이 위치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자신을 원망하진 않았다. 그녀는 그 나무집들이 마치 낮은 궁전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꽤 긴 시간이 흘렀지만 역시 마을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나타나지 않았다. 울타리를 넘어가 확인해 볼까라는 충동이 들긴 했지만 그녀에겐 그러한 위험부담은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확인이 끝났으니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자신의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그녀는 심장이 멎을듯이 놀랐다. 오른팔을 깔고 앉아있지 않았더라면 반사적으로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그 거대한 팔을 휘둘렀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녀는 그러지 않았고,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히 여기며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아이가 불안과 호기심이 반씩 섞인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짙은 어둠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아 목소리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라 추측한 것 뿐이지만.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이런 시간에."


앳된 목소리였다. 아직 변성기도 찾아오지 않은 어린 꼬마가 분명했다.


"너야 말로 누구냐. 꼬마가 이런 시간에 이런데를 돌아다니고?"

"..잠이 오지 않아서요."


예상 밖의 대답에 그녀는 조금 황당함을 느꼈다. 춥다고 하면 집에 불을 놓는다고 할 정도로 말도 안되는 대답이였다. 이 마을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으면 사람쯤은 간단히 죽이는 사나운 야생동물들이 날뛰는 밤의 격리구역을 산보하는 것인가? 뭐라 할말이 없어 입을 다물고 있자 그 소년은 이어 쾌활하게 말했다. 이상할 정도의 쾌활함이였다.


"누나는 누구세요? 저희 마을에 놀러오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데."

"놀러온게 아니야."


그녀는 툭 내뱉고는 그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로 할 말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그녀와 소년 모두 눈가리개를 하고상대방과 눈싸움을 하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더이상 대화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깔고앉아있는 기계팔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차.'


어두워서 정확히는 볼 수 없었으나, 그 소년의 시선이 갑자기 움직여진 거대한 팔을 쫒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어린 꼬마가 이 팔을 보았을때 무엇을 느낄지 생각해보았다. 공포? 두려움? 하지만 그녀의 걱정과 다르게 그 꼬마는 짙은 어둠때문에 팔을 보지 못한 모양인지, 시선을 다시 돌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귀찮다는듯이 말했다.


"너 이 마을에 사냐?"

"네. 누나는 어디에 사세요? 요 근처엔 여기 이외의 마을은 없을텐데.."

"숲."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만난지 1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누나라고 부르다니. 그녀는 그 소년의 놀라운 붙임성에 혀를 내두르며 몸을 휙 돌리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말이 성큼성큼이지, 그녀의 키는 그리 큰 편이 아니라 뒤에서 소년이 그냥 걸어와도 쫒아올 수 있는 정도의 보폭이였다. 그리고 그 소년은 실제로 그러고 있었다.


"숲 어디요? 이 근처는 위험한 동물들이 많잖아요."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가서 잠이나 자."

"잠이 안온다니까요."


그녀는 이제 대답하기도 귀찮은지 소년이 무서운 속도로 쏟아내는 모든 말을 무시하며 묵묵히 갈 길을 걸었다. 소년은 계속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노력했으나 그녀가 완강히 대화를 거부하자 입맛을 다시며 자신이 사는 마을로 터덜터덜 돌아갔다.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온 그녀는 코트를 대충 벗어던지고 오래된 침낭 위에 드러누웠다. 꽤 오래 걸었고, 경직된 자세로 상당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의 그녀의 몸은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수놓는 별빛을 바라보며, 그녀는 잠에 빠졌다.

 


따스한 햇빛이 눈꺼풀을 비집고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기분좋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오른팔로 땅을 밀어내 몸을 빙글 돌리며 일어나는 기예를 행하며 일어났다. 불균형적인 팔의 비율때문에 그런 방법이 가장 편했던 것이였겠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밝은 햇빛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왼팔로만 기지개를 펴서 밤새 움추러들었던 몸의 근육을 쭉 펴주었다. 근처를 더듬어 바위 위에 걸터 앉을 때 쯤, 눈이 밝은 빛에 익숙해지며 자신의 보금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어제밤에만 해도 보금자리에 없었던 것이 그녀의 눈 앞에 나타나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시네요."


어제밤, 그 마을 앞에서 만났던 소년이 빙글빙글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머리를 벅벅 긁었다.


"..돌아간 척 하며 따라온거냐? 허, 참. 당돌한 꼬마로군."

"헤헤."


그 소년은 만족스런 미소를 띄우며 눈웃음을 지어보았다. 그녀는 그런 속편한 소년에게서 그저께 채워넣은 물통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젯밤에 마셨는지 물이 절반정도 남아있었다. 그녀는 오늘 중에 강에 들러 물을 채워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물병에 손을 뻗었다. 


"왜 따라온거야?"

"심심해서요."

"심심하다니. 니 마을엔 친구 없어?"

"..네."

"그렇다고 해도 난 네 친구가 될 수 없어. 놀아줄 생각은 더욱 없고. 돌아가."


그녀는 차갑게 내뱉고 남은 물을 입에 쏟아넣었다. 밤새 마른 목구멍이 촉촉해지는 기분좋은 느낌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그 소년을 향해 몸을 돌렸다. 어두웠던 어젯밤과 달리, 지금은 그 소년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헝클어진 금색 곱슬머리에 푸른 눈, 그리고 주근깨가 박혀있는 두 뺨. 곳곳이 뚫린 허름한 추리닝을 걸친 소년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오른팔은 어떻게 된 거에요?"


소년은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궁금해 죽겠다는 태도로 그녀에게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소년이 자신을 만만히 여긴다고 생각한 그녀는 조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빈 물통을 대충 집어던지고 소년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가 위압적인 태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오른팔을 눈앞에서 약간 흔들어보이는것도 잊지 않았다. 상당히 위협적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의 얼굴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너, 내가 안무섭냐?"

"네?"

"아니면 무시하는건가? 내가 여자라서?"


살기등등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짐짓 무서운 인상을 쓰며 그를 노려보았다. 왼쪽 눈의 흉터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더욱 험악해 보였다.


"아뇨. 무시하는게 아니에요. 여자라서 무시한다는건 더욱 더 아니고요."


소년의 차분한 대답에 그녀는 표정을 조금 누그러트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소년은 이어서 말했다.


"전 목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그녀는 소년의 대답에 코웃음을 쳤다.


"재밌네. 그럼 나는 선인이라는 뜻이야?"


소년은 그녀의 말에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네. 당신은 착한 사람이에요. 차갑게 보이려고, 무섭게 보이려고 말을 험악하게 한다고 해도 마음이 따듯한 사람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목소리에서 모든걸 느낄 수 있어요."


그녀는 그런 소년의 낮뜨거운 말에 당황했다. 뜨끔한 느낌을 감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무섭게 말하는 것이란 자각은 없었으나, 그의 말을 들으니 자신이 정말로 그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곡을 찔린 그녀는 소리를 빽 내질렀다.


"그딴 미신같은 소리 할거면 니 마을로 당잘 돌아가!"

"헤헷, 얼굴이 뜨거워지셨네요. 알았어요. 그런 말 안할게요. 그럼 있어도 되죠?"

"아니. 꺼져."

"에이, 너무해요. 조금만 있을게요."

"아, 몰라. 있던지 말던지."


그녀는 소년에게서 몸을 홱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다. 팔을 질질 끌며 걸어갔기 때문에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커다란 짐승이 지나간듯한 자국이 남았다. 


"그런데 그 오른팔,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말 안해줄거에요?" 

"말하자면 길어. 말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너무해."


소년의 입이 툭 튀어나왔다. 그녀는 약간의 승리감을 맛보며 자신이 갈 길을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보금자리 뒷편의 나무였다.


"너무하긴 개뿔이. 집으로나 돌아가. 부모님이 걱정하신다."

"..없어요."


그의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집이 없어요. 부모님도 없구요."


그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괜한 말을 한 걸까?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소년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사과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고개를 돌려 거대한 오른팔을 나무 위로 뻗었다. 그 위에는 그녀가 잡은 사냥감들이 잔뜩 보관되어 있었다. 언제 잡은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 훈연처리를 마쳐서 어느정도 긴 보관기간을 가지게 된 고기들이였다. 그녀는 그 위를 더듬거리다가 제일 연한, 그러니까 제일 먹을만한 토끼고기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그 고기를 보고 입맛을 쩝 다신 후 소년에게 휙 던졌다.


"먹어."


소년은 그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다가 날아오는 고기에 이마를 부딫혔다. 얼얼한 이마를 어루만지며 그 소년은 발 앞에 떨어진 고기와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상한거 아니니까 먹어도 돼."


퉁명스레 내뱉은 그녀의 말에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녹아 있었다. 물론 그녀는 그 사실을 몰랐겠지만, 목소리의 구분에 익숙한 그 소년은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진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인사치례는 됐어. 와서 민폐만 끼치는구만."


다른 고기를 집어든 그녀도 소년 근처의 바위에 걸터앉았다. 소년은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감사의 목례를 한 후 고기를 한 입 베어물었다.


"와, 마시어요."


입에 고기를 가득 넣어 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소년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가식 안떨어도 돼. 격리구역 동물들 고기맛이 얼마나 안좋은지는 저명한 사실이니까."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맛만 좋은데요 뭘. 그리고.. 격리구역? 그건 뭐에요?"


예상 밖의 대답에 그녀는 소년을 바라보며 눈을 꿈뻑였다. 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이 소년이 자신이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바보라기보단 그가 사는 곳에선 격리구역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가 있다는 것이 더 그럴듯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가 자신의 결론에 납득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숲을 지칭하는 말이야."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별로 예쁘지 않은 이름이네요."

"실제로 예쁘지 않으니까."


그녀는 곁눈질로 비틀린 나무들을 흘끗 쳐다보며 들고있던 훈제고기를 물어뜯었다.


"그런가요.."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소년은 이어서 계속 말했다. 


"저희는 그 숲을 에메랄드 시라고 불러요."

"거창한 이름이네."


그녀는 속으로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 숲은 에메랄드는 커녕 초록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다행일 정도로 한없이 어두운 암록색이였기 때문이다. 


"근데 누난 이름이 뭐에요?"


한동안 조용히 음식을 먹던 소년이 입 안 가득한 고기를 겨우 삼킨 후 말했다. 


"도로시."

"예쁜 이름이네요. 어울려요."


이름에 대한 칭찬은 처음이라, 특히 어울린다는 말은 더욱 처음이라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도로시는 그 소년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잠깐 입을 닫았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소년은 이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저는 오즈에요. 웃긴 이름이죠?"


자신의 이름을 오즈라고 밝힌 그 소년은 아직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도로시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오즈의 마법사."

"네?"

"오래된 동화중에 오즈의 마법사라는 동화가 있어. 도로시라는 소녀가 여러 친구들을 데리고 오즈의 마법사를 찾으러 간다는 내용이였나."

"기막힌 우연이네요."


소년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그 동화에 등장하는 도시 또한 에메랄드 시라는 사실도 말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관두기로 하였다. 이 이상으로 친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식사를 마친 후에 그 소년을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그 생각이 자신만의 허황된 바램이란걸 자각했다. 토끼 훈제를 남김없이 먹어치운 그 소년은 볕이 잘 드는 따듯한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신의 고독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방해하는 이 불청객을 쫒아낼 방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도로시는 그냥 그 소년에게서 신경을 끄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세상모르고 잠든 소년을 보며 오늘 하루정도는 나태해져도 괜찮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내리쬐는 따듯한 햇빛 때문인지, 아니면 새근새근 잠든 불청객 때문인지, 그녀는 몸이 나른해지는것을 느끼며 바위에 몸을 기댔다. 감기는 눈꺼풀과 함께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즈의 마법사라.. 정말 기막힌 우연일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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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자신의 마을로 돌아간 것은 시간이 꽤 흐른 뒤의 일이였다. 소년은 도로시를 졸졸 쫒아다니며 그녀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녀를 최대한 귀찮게 하는 것이 소년 일생 일대의 목표처럼 보일 정도로. 애석하게도 도로시는 소년이 쫑알대는 것만으로 믿을수 없을 정도로 넓은 범위 안의 사냥감을 남김없이 쫒아버리는 놀라운 재주에 감탄할만한 여유를 가지진 않았지만, 그에게 역정을 쏟아낼 수 있는 포악한 성격정도는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순진한 웃음이 가미된 애교어린 사과는 그녀의 분노를 순식간에 공중분해 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숲에 홀로 사느라 사람을 다뤄본지 오래된 그녀로서는 그런 소년을 당해낼 재간이 도저히 없었다.


"하아.."


 소년을 마을로 돌려보낸 후 그녀는 보금자리의 바위에 걸터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나운 혼키바를 상대하는 것보다 그 소년을 상대하는게 더 피곤하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신이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내일부터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떠오르는 아침 해와 동시에 그녀를 반기는 것은 소년의 눈웃음이였다.

그 날, 그녀는 짜증을 내는 것도 지칠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고, 이제 그를 돌려보낼 기력도 남지 않아 그가 자신의 보금자리에 체류하는 것에 더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자신에게 약속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는 것마저도 포기했다. 그녀가 거의 자포자기 상태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항상 방긋방긋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농담이나 유치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아주 귀찮다는걸 강조하기 위해 고개만 미세하게 끄덕이거나 심지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냉담한 태도를 고수했지만, 그녀의 바램과는 다르게 소년은 그런 반응에도 전혀 낙담하거나 상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록 더욱 신나서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가끔 도로시는 소년이 쫒아오지 못하도록 숲 깊숙한 곳으로 도망치기도 하였으나, 그럴때마다 소년은 놀랍게도 몇분도 걸리지 않아 숨은 그녀를 찾아내는 신묘한 재주를 보여주어 그녀를 낙담하게 만들었다.



"이건 뭐에요?"


소년이 보금자리 근처의 나무 사이에 대충 밀어넣어진 동물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소년의 몸집의 세배는 될 듯한 거대한 짐승의 유해였다. 죽은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그 시체 주변에는 크고 작은 벌레들이 윙윙거리며 뜻밖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도로시는 소년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돌려 곁눈질로 그가 가르키는 대상을 흘끗 보았다. 


"혼키바."


귀찮아 죽겠다는듯한 그녀의 짧은 대답에 소년의 눈이 단번에 커졌다.


"와! 누나가 잡은거에요? 이런 괴물을 어떻게? 이건 악마잖아요! 이 악마가 누나를 공격했어요?"


그녀는 소년이 호들갑스럽게 말한 '악마'의 의미가 '악마만큼 무서운 혼키바'인지, 아니면 진짜로 혼키바를 악마라고 여기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 대신,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물론 거대한 오른팔을 지탱하고 있는 어깨는 움직이지 않았고, 때문에 왼쪽 어깨만 으쓱이는 이상한 제스쳐가 되었지만 애초에 소년은 그녀의 대답에는 일말의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것 같았다. 소년은 경외심이 가득 담긴 눈망울을 똘망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부담스런 눈빛을 무시하려 애쓰다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피야."


소년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로시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저놈의 피를 주변에 뿌려두면 다른 짐승들이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거지. 요 주변에서는 제일 강한 생물이니까."


예외인 동물이 하나 있지만. 이라고 짧게 덧붙인 도로시는 소년이 이해할거라 기대하지 않았고, 그녀의 예상대로 소년은 덧붙인 말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소년은 감동에 겨워 눈물마저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혼키바를 쿡쿡 찔러보았다.


"그래도 정말 대단해요. 용감한 마을사람들도 혼키바가 마을을 습격하면 덤빌 용기를 내지 않아요."

"좋은 선택이야. 한놈을 건드리면 개떼처럼 몰려오거든."

"네?"


도로시는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을 후회했다.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 그녀로선 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발언은 최대한 삼가야만 했다. 소년이 아까처럼 자신의 말을 신경쓰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품으며 그녀는 시선을 저 멀리 돌렸지만, 역시 그것은 헛된 희망이였다. 소년은 방금 전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과장된 몸짓과 함께 반문을 해왔고, 도로시는 귀찮음을 크게 내색하며 손을 휘휘 젓는 것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소년은 선망의 눈망울을 감추지 않으며 계속 질문했다.


"그럼 혼키바들이 떼거지로 몰려왔었다는 거에요? 누나는 그때 어떻게 하셨어요?"

"..몰라. 별 회상하고싶은 추억도 아니고. 그만하자."


도로시의 목소리에 담긴 참을성의 한계를 느낀 소년은 아쉬워하며 입을 닫았다. 그녀의 옆자리에 주저앉은 소년은 입을 삐죽 내민 채 도로시가 하는 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도로시는 잡은 사냥감의 가죽을 벗기고 연기에 구워 가공 처리를 하는, 그러니까 훈연작업을 하고 있었다.  격리구역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저장식량은 필수적이였다. 전기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격리구역이였기 때문에 냉장고와 같은 음식물 보관기구를 이용할 수 없는데다가 아무런 방부처리 장비가 없는 도로시에겐 잡은 사냥감을 훈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였다. 
거대한 오른팔은 가죽 벗기기나 고기 손질하는 것과 같은 섬세한 작업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왼손과 두 발을 이용해 능숙하게 고기를 손질하는 기예와도 같은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다. 발을 이용해 고기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왼손에 들린 예리한 주머니칼을 이용해 가죽과 내장을 살코기와 분리해내는 모습은 정육점집 사장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숙련된 것이였다. 

멍한 눈으로 칼이 춤추는 것을 바라보던 소년은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돌연 박수를 짝 쳤다. 돌발적인 그의 행동에 놀라 칼로 자신의 발을 찌를뻔한 도로시는 한쪽밖에 없는 눈을 흘기며 소년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소년은 허리춤에 걸린 작은 가방을 뒤지느라 그 위협적인 눈빛을 느끼지 못했다. 곧 소년이 주머니에서 꺼낸 물건은 다름아닌 작은 피리였다. 도로시는 그 가 꺼낸 물건을 흘끔 보고 다시 시선을 자신이 하는 일로 옮겼다.

소년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으며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목을 가다듬고 피리를 몇번 후후 불어본 다음, 소년은 눈을 감고 피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청아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한 음색이 햇빛을 간질이며 주변을 가득 매웠다. 훌륭한 연주였다. 만족스런 연주를 마친 소년은 입에서 피리를 떼며 눈을 떴다. 그리고 굉장히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는 바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로시의 눈빛이였다. 평소엔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거나 경고의 의미가 담긴 흘끔거림밖에 보지 못한 소년으로선 그것은 상당히 기상천외한 일이였다. 도로시의 푸른 눈은-비록 한쪽밖에 없지만- 경고도, 놀라움도 담고 있지 않았다. 대신 아주 경미한 황홀감을 함유한 눈빛이였다. 약간 게슴츠레한 눈 또한 소년에겐 익숙치 못한 모습이였다. 소년은 뭐라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는 것으로 응했다. 그렇게 몇 초, 도로시의 동공이 놀란 듯 커지더니 소년으로부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소년은 조금 당황했다. 근 몇주간 그녀와 함께 지냈지만, 지금 도로시가 보이는 모습은 명백한 부끄러움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상냥한 혼키바만큼 이상한 것이였다. 가까스로 못 볼것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억누른 소년은 어쩔까 궁리하다가 그냥 늘 하던대로 대처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연주 괜찮았어요?"


도로시는 고개를 돌리진 않았지만 소년의 말에 몸을 살짝 움찔였다. 몇 초간 뜸을 들이다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쁘진 않네. 어디서 배운거지?"


소년은 그 어정쩡한 대답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라는 것을 알았고, 미적지근한 대답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친구한테 배웠어요. 친구는 그 어머니에게 배웠구요."

"전엔 친구 없다며?"


도로시는 이제 어느정도 안정된 듯 평소의 차가운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소년은 그 질문에 쓴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없어요. 이젠."


소년의 말에 잠깐 멈칫했던 그녀는 더이상 그 대답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고기 손질을 마친 도로시는 무뚝뚝하게 손과 발에 잔뜩 묻은 핏물을 바위 위에 널부러져 있던 천으로 대충 닦아냈다. 그리고 성냥을 집어들고 미리 준비해뒀던 화덕에 불을 지폈다. 제대로 마르지 않은 장작은 진한 연기를 울컥울컥 내뿜으며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도로시는 승천하는 연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죽은건가?"


갑작스런 도로시의 물음에 멍하니 있던 소년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지만, 그녀는 소년을 바라보고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의 시선은 다시 땅을 향해 이동했다.


"...아뇨. 잡혀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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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구름이 많이 낀 밤이였다. 달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달빛이 구름에 산란하여 물감처럼 퍼진 모습을 보며 도로시는 그것이 퍽 답답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위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엔 영롱한 빛을 뽐내는 수많은 별들이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 어떤 별도 들어오지 못했다. 대신 그 눈에는 막막한 고뇌가 가득 차 있었다.




같은 시각, 도로시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도시에서 살았던 그는 난생 처음보는 광경에 별의 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감탄하며 턱을 몇번 긁적였다.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광경이였으나, 머리를 지탱하는 그의 목은 머리와 견해가 약간 다른 것 같았다. 그가 뻐근한 목을 우득우득 꺾으며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등을 툭 건들였다. 밤은 어두웠고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없던 그였기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한 중년 남성이 그의 모습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나?"


그는 황급히 뻗었던 손을 거두며 거수경례를 하였다. 하지만 놀란 탓인지 그의 자세는 엉거주춤하기만 했다. 


"아닙니다! 중위님!"


중위는 긴장한 남성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사람좋은 미소를 띄웠다.


"주변에 사람이 없을땐 그런 거추장스러운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네, 스트로터 병장."


스트로터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찌 해야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중위는 그런 그에게서 시선을 하늘로 천천히 옮겼다.


"별이 참 예쁘지?"

"네.. 네? 아. 네, 저.. 그런것 같습니다. 아니, 정말 멋지네요."


"..병장. 난 근무지 이탈을 했다고 해서 징계를 내릴 정도로 빡빡한 사람이 아닐세. 긴장하지 않아도 돼."


중위의 말에 스트로터의 얼굴이 미세하게나마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중위의 말에 그의 얼굴은 다시 샐쭉해졌다.


"물론 시말서는 써야겠지."



중위가 돌아간 이후 스트로터는 땅에 침을 탁 뱉었다. 물론 그 분노의 대상은 역시 방금 돌아간 중위였고, 그의 권고를 따라 근무지로 돌아가는 중이였다. 그는 자신이 농땡이를 치다 걸린 것에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뻔뻔한 태도로 돌아오는 그를 보고 좋지 않은 표정을 짓는 병사들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도착한지 몇분 되지 않은 소규모 파견대는 며칠정도 계속 될 임무를 위해 천막을 이용해 간단한 숙소를 만들고 있는 중이였다. 습한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노동을 강요당하는 병사들은 농땡이를 치는 스트로터가 달가울 리 없었다. 스트로터는 수십개가 넘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별 신경쓰지 않은 채 완성된 천막 중 하나로 들어갔다. 


"재수도 없으려니. 격리구역쪽 일에 차출된 것도 짜증나는데 하필 저 인간 관할이야?"


천막 안에는 스트로터와 같은 군복을 입은 사내 셋이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 노름을 하는 중이였다. 심각한 표정의 사내들은 손을 살짝 드는 것이 스트로터의 귀환에 대해 반응의 전부였고, 그들의 상태로 보아 그 이상의 리액션은 힘들 것 같았다. 빈 자리에 대충 걸터앉은 스트로터는 한 사내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를 확 뺏은 후 입에 꼬나물었다. 담배를 뺏긴 남자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스트로터를 흘끗 째려본 후 다시 노름판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스트로터는 담배를 쭉 빨며 그들의 노름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디갔다 온거야? 이쪽 분위기 별로 안좋은거 몰라?"


테이블 위에 올라간 돈을 두 팔을 이용해 감싸안듯이 모으던 사내가 입을 열었다. 다른 두 사내는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보는 눈빛이 언제는 고왔던 적이 있었나. 그냥 있는거지. 그건 그렇고 나중에 술 한잔 사지? 꽤 거하게 번 것 같은데."

"얼빠진 소리걸랑 그만두고 임무 브리핑이나 읽어. 너 없어서 여기 오퍼레이터가 펄펄 날뛰었어. 이거라도 읽어두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안가는군."


사내는 테이블 아래에 대충 쌓여있는 서류를 뒤적거리다가 종이뭉치를 그에게 내밀었다. 

욕지꺼리가 상당부분 함유된 긴 넋두리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이 이 지긋지긋한 곳에 온 이유에 대해 고찰할만한 여유가 생겼다. 

"보호 조약에 따른 권리 이행... 난 아직도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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